목록언젠가의 너에게 (36)
별의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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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봐." 여행을 하다 보면 길 위에서 무수한 인연들과 흩어진다. 방금까지 가장 깊은 내면을 꺼내든 사이와 언제 만날지 모를 기약 없는 안녕을 얘기할 때면, 저마다의 인사말을 갖는다. 방비엥 할리스 사장님은 인연이 닿는다면 또다시 만나자고 말했고, 루앙프라방 호텔 직원은 내년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시작되는 것부터 끝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매번 신기하다. 사실 매듭지으려 한들 인연에 끝이라는 게 있나. 길 위의 인연들 중 남미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된 인연들과는 7년에 접어든다. 지구 정반대 편까지 함께 겪은 사이라서인지 한국의 끝과 끝은 우습다는 듯 자주 만났고, 그 모든 시간이 감히 행복했다. 우리는 실없이 웃었고, 작은 것들에 진지했다.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딪히기도 했고,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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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태국을 왔다. 여행에서 남은 돈들은 대개 그대로 모아두는 편인데 스위스 다음으로 간지 오래된 화폐가 태국이었다. 그간 참 부지런히도 다녔구나. 그동안 내가 대단히 달라졌나 생각해 보면, 사실 모르겠다. 치앙마이는 첫 가족여행이었다. 예약한 숙소는 예약이 되지 않아 현지에서 다른 숙소의 문을 두드리고, 버스터미널까지 가기 위해 탄 툭툭은 한참을 돌아가고. 야간 버스를 놓칠 뻔하여 뛰어 들어가서 겨우 탔다. 첫 가족여행을 나답게 다니니 어리숙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좋았다. 그래서 대책 없이 가도 여전히 그렇게 나를 받아줄 것 같았다. 출국 한 시간 10분 전에야 퇴근해서 정신없이 공항으로 달려가고, 빠이행 버스는 예약도 하지 않아 터미널 근처에서 3시간을 보냈다. 빠이를 도착하고도 숙소에 짐만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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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죽음은 늘 두려운 것이었다. 잠든 엄마의 머리맡에서 죽지 말라며 펑펑 울던 꼬마는 아직도 엄마에게 환장포인트로 남아있다. 여전히 그렇다. 죽음의 고통 따위가 아니라 누군가가 떠나간 후 남겨질 내가 두렵고, 누군가를 남기고 떠나가는 내가 두렵다. 내가 그를 그리워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들과, 어쩌면 내 기억 속에서 잊힐 것들이 두려웠다. 경험해보지 않은 그 상황은 종종 나를 괴롭힌다. 삿포로행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흔들렸을 때도 그랬다. 기왕이면 이런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찰나의 순간 떠나고 싶고,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남겨진 쪽보다 떠나는 쪽이 되고 싶다. 가지는 것보다 잃는 것이 늘 더욱 두렵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새로운 무언가에 발을 디디지 못한 채 물가만 참방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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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은 두렵다. 너무 많이 쓴 서두라 질릴 만 하지만 정말 두렵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강박증이 있고 그런 나를 알고 있기에 더 겁난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 패닉이 올지 몰라서 더 조심스럽다. 이렇게 겁낼 거면 안 하는 게 맞지 않나.. 윌스미스가 최고의 것들은 두려움 뒤에 있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미지의 것일수록 두려움은 더 커지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두려운 것은 더 많아진다. 프리다이빙도 그에 앞서 체험까지 했음에도 시작하자마자 겁이 났다. 아무래도 무릎이 다쳐서 자유롭지 않은 영향도 한몫했겠지. 그래도 물에 적응되자 조금씩 두려움은 걷히고, 차근차근 가르쳐준 강사님 덕분에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퀄 안된다고 잉잉잉했는데 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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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어쩌면 가기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마저 싫으면 정말 좋은 게 얼마 없는데. 11월 정신없이 바쁜 통에 어디든 떠나야겠다. 하고 결정한 것이 달랏, 후쿠오카 그리고 삿포로. 이제 절반쯤 지나고 있다. 사실 어디든 가기 귀찮고 침대에 틀어박혀있는 것이 제일 좋다. OTT가 성행하며 자연스럽게 아이디가 하나 둘 생기고, 살면서 이렇게 영상을 많이 본 시간도 없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그가 게임을 하지 않으면서 집에 있으니 잉여인간이 된 것 같다고 했는데 오히려 나는 과포화 상태에 지쳐 잉여인간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든 하지 않는 주말이 아깝게 느껴져 무엇으로든 채워나갔는데 어쩌면 그저 원래대로의 상태가 나에게 나은 걸지도. 그 무엇도 귀찮고 놓아버리고 싶다가 또 무엇도 놓지 못한 채 머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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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은 변화가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입학과 졸업.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때로는 긴장감에 잠 못 이루던 일들이, 몇 날을 지새우게 한 고민들이 어느 순간 내게 익숙한 것으로 남겨졌다. "여행 마저 재미가 없으면 이제 어떡하지?" 여행은 내게 큰 의미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고, 그 속에서 성장해 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것에 부딪히는 방법도 여행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그 여행마저 무뎌진다는 것이 두려웠다. 몇 년 전 엄마는 더 이상 재미있는 일이 없어서 겁난다고 했다. 더 이상 자극받지 못하는 삶은 도태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사실 나는 늘 그랬다. 여행 가기 전날 밤이면 때로는 귀찮음에, 때로는 두려움에 밤 지새웠다. 낯선 도시의 낯선 언어가 다시 돌아가고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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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여행을 하며 살고, 여행 속에서 살아가며 자주 받는 질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난 곳이 가장 좋았죠." 올 한 해 가장 특별한 날을 꼽을 수 없는 것처럼 가장 특별한 곳은 없었다. 매 순간순간이 특별했고 그 나름의 행복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나는 그래서 늘 싫어하는 것도 많고, 아파하는 것도 많다. 꼭 하나에만 정을 주지 못해 모든 것을 그러안다 보니 온 마음이 무겁게 짓눌리곤 했다. "그게 뭐야." 라고 말하는 창희오빠와 석영언니의 타박에 이렇게 대답하면 있어 보이잖아요.라고 웃으며 반박했다. 하지만 나보다 더한 여행자들에게 성에찰 대답은 아니었지. 굳이 한 군데를 꼽으라고 말하는 성화에, "....... 지금?" 하고 답하자 이런 대답이 제일 싫다고 그들은 야유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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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는 가로수에 귤이 열린다. 승빈은 그 귤을 좋아했고, 나는 그 덕분에 귤을 볼 때마다 그를 떠올렸다. 나는 포르투에서 내내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에그타르트마다 스타일이 달랐고 승빈은 내가 좋아할 스타일의 에그타르트라고 종종 말했다. 그와 헤어진 지 한참이 지나서야 가로수의 귤을 맛봤고 엄청 시고 상큼한 그 맛을 그에게 전달하자, 그는 놀랍게도 이미 자신도 먹어봤다고 말했다. 사실 놀랍지도 않은, 당연한 것을 놀랍게도 라는 표현을 덧붙인 그가 조금 귀여웠다. 나를 보며 어떻게 I 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유독 많다. 그는 처음 본 내 MBTI를 단번에 맞췄다. 우리의 여행에는 이미 서로가 진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가까워지고, 잠시라도 더 행복해져야지. 내 여행이 그대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