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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별세상
"세상은 한 권의 책이야." 책을 읽으며 글을 떼고, 어릴 적 책을 보며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낸 나에게 책은 단순한 사물 이상의 의미였다. 그리고 나에게 세상도 그렇다. 집 밖을 나서서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그 다양성에 충격을 받은 적도 적지 않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을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까지의 순간들은 무던히도 어렵다. 변화와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여행은 막연한 것. 무언가 큰 결심을 하지 않으면 감히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1년간 휴학을 결심했다. 휴학을 하기 위해서는 교수님과 상담을 해야 했는데, 그때 교수님은 여행 때문에 휴학한다는 나를 어이없어하셨다. 그것도 여행을 할지, 워킹홀리데이를 갈지 갈피조차 잡지 않은 채 무..
"끝까지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외로움이 일본 여행일 줄 알았다. 사실 외로움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가져봐야 하는 거고, 또 잃어봐야지 알 수 있는 것인데, 평생을 조용하게 살아온 내가 새삼스럽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있었을 리가. 나는 매년 반이 바뀌는 순간이 제일 싫었다. 새로운 반에 가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새롭게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친한 사람이 하나도 없이 2학년이 된 고등학생은 더욱더 싫었다. 차라리 아예 새롭게 시작한 1학년 때와 달리 모두가 이미 무리 지어 있었고 그 무리 어디에도 들어서지 못한 나는 2주 가까이 혼자 다녔을 만큼 새로운 것을 겁내고, 시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12년도 두 번째로 혼자 떠난 여행이자 첫 국내여행인 내일로는 외로움. 딱..
"그곳은 너에게 어떻게 기억되어 있어?" 여행을 만들어주는 것들에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람이다.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생각하고 보면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고 온전히 혼자 다닌 여행은 없었다. 긴 여행이건, 짧은 여행이건, 얼마간의 시간이든 누군가와 인연이 맺어졌다. 인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그 시간만을 함께 보낸 사람들도 있고,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모르게 영영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많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마주치더라도 알아보지조차 못하겠지. 그럼에도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첫 번째 여행에서 만났던 그 사람도 그렇다. 배를 어디서 어떻게 타는지, 티켓은 어떻게 보는 거고, 시내로 어떻게 들어가는지조차 제대로 몰..
"매일 무섭지, 겁나고, 왜 하나 싶어." 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여자 혼자서 여행 갈 생각을 다 했어. 유유상종이라고 하던가, 20살이 되고 처음 혼자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로 그제까지 알아온 친구들은 하나같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런가, 대단한가 나.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 방학을 틈타 일본으로 갔던 3박 4일의 처음, 혼자 하는, 해외여행. 살면서 에펠탑은 한 번 봐야지, 가 전부였던 20살의 나에게 첫 해외여행은 대단한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어머니가 티켓 끊어줄 테니 가봐라,였다. 엄마의 사리사욕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렇게 고작 3박 4일의 여행에 친구들의 배웅까지 받으며 떠났던 길은 상당히 멀미 났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배를 타고, 겨울옷을 껴입은 상태에 양쪽에 남성분들이 있어 갑갑하고, ..
" 누나, 그럴 땐 숨을 잠시 참아봐. " 2년 전 쿠바를 여행할 때 익재가 해준 말은 일상에서도 종종 곱씹게 된다. 스쿠버 다이빙이나, 스노클링을 할 때 어느 순간 내가 바닷속이라고 인지하게 되면 패닉에 빠지며 숨이 가빠올 때가 있다. 이렇게 과호흡이 될 때는 차라리 숨을 참는 게 낫다고 해 준 말인데 살아감에 있어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사실 도피를 위해서 해외를 선택한 적은 없다. 휴학을 한 뒤 떠났던 유럽 여행은 나에게 도전이었으며,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한 뒤 떠난 남미여행은 전환이었다.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하면서 까지 간 워킹홀리데이는 결단이었고, 이번 유럽여행은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마지막은 마지막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남미여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워킹홀리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