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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거기에 있어줘5_ "세상은 한 권의 책이야." 본문

너는 거기에 있어줘

너는 거기에 있어줘5_ "세상은 한 권의 책이야."

굥갱 2023. 4. 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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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 권의 책이야."

책을 읽으며 글을 떼고, 어릴 적 책을 보며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낸 나에게 책은 단순한 사물 이상의 의미였다. 그리고 나에게 세상도 그렇다. 집 밖을 나서서 다양한 것들을 접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그 다양성에 충격을 받은 적도 적지 않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을 깨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실행하기까지의 순간들은 무던히도 어렵다. 변화와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여행은 막연한 것. 무언가 큰 결심을 하지 않으면 감히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1년간 휴학을 결심했다.

휴학을 하기 위해서는 교수님과 상담을 해야 했는데, 그때 교수님은 여행 때문에 휴학한다는 나를 어이없어하셨다. 그것도 여행을 할지, 워킹홀리데이를 갈지 갈피조차 잡지 않은 채 무작정 휴학을 하고 보겠다니. 본인은 여행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교수가 되었다며 역설했다. 하지만 그건 교수님의 삶이고, 나는 엄청난 대단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정말 없는걸. 가늘고 짧게, 그 무언가 특별한 것을 남기고 갈 생각도, 구태여 삶을 길게 영위할 생각도 애당초 없었던 나는 그저 내가 당장에 죽는다고 해도 후회를 남기지 않을 만큼, 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면 족했는데 그중 하나가 그때는 해외여행이었다. 유행처럼 자유여행이 시작되었을 때였고, 부산에서는 그 수가 많지 않았으며, 주변에서는 전무했다. 그럼에도  결국 휴학을 했고, 생에 첫 아르바이트도 해봤으며, 결국 유럽행을 결정했다. 대단한 무언가의 결실을 남기지도 않았고,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다쳐서 밤새 울다가 출발했다. 그렇지만, 그 1년에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린 왕자는 노을을 보기 위해 하루에 마흔네 번도 본 적 있다고 했다. " 사람은 슬픈 날에는 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걸요." 어린 왕자는, 마흔네 번 내내 서글펐을까. 두껍지 않은 어린 왕자 책은 해를 거듭해 읽을수록 새로운 것이 보인다. 가끔은 왜 어른동화인지 이해가 간다. 마흔네 번의 해가 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감정이 휘말리곤 한다. 스물두 살에 교수님의 만류에도 굳이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서른두 살, 마흔두 살에도 언제든 떠날 수 있겠지만, 그때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세상을 읽고 싶었다. 모든 것을 선택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어떤 것을 더 읽을 수 있으며, 또 그 순간들을 놓치며 살아갈까. 그 해 교수님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여행을 가도 늦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내 서른두 살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고 단언한다. 어쩌면 그 나중은 영원히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여행이 좀 편해지고, 여행사에서 일을 하며 매일 항공권을 검색하는 게 내 일일 때에는 매달 해외로 나갔는데 요즘에는 사실 조금 귀찮다. 엄마랑 이야기하며 나는 여행을 떠나는 걸 좋아한 적은 없었잖아.라고 하니 그녀는 동의했다. 어릴 적 책을 읽던 습관은 사라지고, 책을 사지도 않았는데도 머리맡에는 읽지 않은 책들이 먼지에 파묻혀 가고 있다. 여행을 시작한 지 12년, 여행이 세상을 읽는 새로운 방법이라면 언젠가는 머리맡에 먼지가 쌓여가는 책처럼 내 마음속 지도에도 먼지가 쌓이게 될지도 모르겠지. 그러면 그때는 한 권을 좀 더 깊게 음미하면서 여행해야겠다.

"세상은 한 권의 책이야."
근데 사실, 책은 꼭 안 읽어도 되잖아. 여행만이 정답은 아니야. 나는 여태 해외여행도 안 가고 뭐 했냐는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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