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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거기에 있어줘1_그럴 땐 숨을 잠시 참아봐 본문

너는 거기에 있어줘

너는 거기에 있어줘1_그럴 땐 숨을 잠시 참아봐

굥갱 2023. 2. 2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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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 그럴 땐 숨을 잠시 참아봐. "

2년 전 쿠바를 여행할 때 익재가 해준 말은 일상에서도 종종 곱씹게 된다. 스쿠버 다이빙이나, 스노클링을 할 때 어느 순간 내가 바닷속이라고 인지하게 되면 패닉에 빠지며 숨이 가빠올 때가 있다. 이렇게 과호흡이 될 때는 차라리 숨을 참는 게 낫다고 해 준 말인데 살아감에 있어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사실 도피를 위해서 해외를 선택한 적은 없다. 휴학을 한 뒤 떠났던 유럽 여행은 나에게 도전이었으며,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한 뒤 떠난 남미여행은 전환이었다.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하면서 까지 간 워킹홀리데이는 결단이었고, 이번 유럽여행은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마지막은 마지막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남미여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워킹홀리데이를 그냥 덩달아 신청한 뒤, 약 10개월이 지나 입사한 뒤 비자가 나오고, 그리고 혹시 모르니 비자를 신청하고도 1여 년을 고민했다. 28살. 사실 이대로 떠나는 것은 무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짧은 경력에 이제 겨우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데 굳이 목표도 의미도 없는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이 맞을까. 정말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고, 언제나 돌아와야 하는 곳은 이곳이었다. 그런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한 것은 단 하나. 지금이 아니면 해외에서 살아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떠난 워킹홀리데이는 지옥이었다.

캐나다, 그중에서도 지인이 있고 시급이 높고 세금이 낮다는 이유로 선택한 캘거리는 하필 그 해 사람이 꽤 몰렸다. 집도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고 내가 돈을 내는 집마저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피 말라갔다. 한달살이 하러 왔다고 생각하자라고 매일 다짐을 해도 매일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꽤나 안주하며 현실을 살아가던 내가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겨우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하나 둘 친구가 늘어났지만 캐나다는 그래서인지 늘 떠나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렇게 7개월이 끝나 한국에 돌아오자 이번에는 코로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필 코로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을 갖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부유하게 됐고, 그렇게 의미 없이 나를 소모하는 1년이 지났다. 갑작스럽게 어딘가로 뛰어가야만 하는데 뛰는 방법도, 방향도 알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이냐, 우울감이냐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고, 우울감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땐 숨쉬기 힘들었고, 이대로면 문득 죽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꿈과 현실이 모호해지고, 종종 뛰쳐나가고 싶거나 놓아버리고 싶었다. 한 번 아픔을 깨달은 상처는 끝없이 나를 괴롭히고 다 낫지 않았다고 말하듯 긁어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병원을 가고 운동을 시작하고 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2년을 롤러코스터를 타고선 이번 여행이 끝나자 한결 여유로워진 모습을 보니 조금 우스우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누나, 그럴 땐 숨을 잠시 참아봐."
나에게 여행은 숨을 잠시 고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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