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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거기에 있어줘4_끝까지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 본문

너는 거기에 있어줘

너는 거기에 있어줘4_끝까지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

굥갱 2023. 3. 2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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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외로움이 일본 여행일 줄 알았다. 사실 외로움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가져봐야 하는 거고, 또 잃어봐야지 알 수 있는 것인데, 평생을 조용하게 살아온 내가 새삼스럽게 외로움을 느낄 새가 있었을 리가. 나는 매년 반이 바뀌는 순간이 제일 싫었다. 새로운 반에 가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새롭게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친한 사람이 하나도 없이 2학년이 된 고등학생은 더욱더 싫었다. 차라리 아예 새롭게 시작한 1학년 때와 달리 모두가 이미 무리 지어 있었고 그 무리 어디에도 들어서지 못한 나는 2주 가까이 혼자 다녔을 만큼 새로운 것을 겁내고, 시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12년도 두 번째로 혼자 떠난 여행이자 첫 국내여행인 내일로는 외로움. 딱 그 단어 자체였다. 겨울이었고, 추웠고, 어리바리했지만 그 모든 것은 다 흘러갔고 그 단어 하나만이 남겨져있다. 저마다 무리 지어 움직이는 사람들과, 익숙한 한국어, 모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떠드는 사이 아무와도 그 시간을 나눌 수 없는 것은 아예 낯선 해외에서 겪는 기분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고등학교 2학년의 체육시간 때처럼 군중 속의 고독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세상에 내 편이 없는 기분. 다소 거창한 표현이지만 혼자 국내여행에서 느끼고 온 소감이었기도 하고, 또 동시에 세상에 혼자 있어본 것이 처음이나 다름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순간순간들을 제대로 즐기기보다는 내 외로움에 뼈저린 시간들이 더 길었다. 원래 계획은 순천, 전주, 군산, 서울, 강릉, 양동을 거쳐 대구를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지만 도저히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어서 도망쳤다. 내 세상에서 가장 멀었던 서울, 그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일로 티켓이니 입석으로 무궁화를 타고 긴 시간을 내려왔다. 출발할 때부터 불안과 외로움에 사무쳤으니 어쩌면 제법 버텨낸 것일 수도 있다. 내일로에서도 우연히 찜질방에서 동행을 만들었고, 그녀 덕분에 내 여행을 더 길게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내 외로움은 나를 잠식했고,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건 내 세상에 숨는 것뿐. 그렇게 도망치고, 포기하고, 숨으면 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사실 도망도, 포기도, 실패도 아니었다. 그렇게 이 악물어가며 버틸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이때 이후로 군산을 가본 적이 없는데, 바꿔 말하면 이때가 아니면 군산을 아직도 가보지 못했을 거라는 거다.

끝까지 완주하지 않으면 실패라고만 생각했는데 완주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완주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배웠다. 이제는 나 스스로도 집순이라고 나를 설명하기에 애매해져 버렸지만 어릴 때는 부딪히고 깨지는 것이 두려웠고, 마음을 나누거나, 시간을 나누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무언가에 마음을 쓰면 그것을 통해 얻는 것보다는 언젠가 그것을 잃어버릴까 봐 더 마음이 쓰여, 새로운 것을 위해 내 세상을 벗어나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좋아하는 것은 마음이 많이 쓰이고, 나를 일희일비하게 만든다. 귀찮게도. 하지만 이제 문밖에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안다. 문을 열지 않았으면 영영 몰랐을 세상을.

"끝까지 해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넓어진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을 가장 사랑한다. 그리고, 그 해 외로움 속에서 봤던 일몰이 내 생에 가장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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