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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여행 240123 본문

언젠가의 너에게

삿포로여행 240123

굥갱 2024. 2. 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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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죽음은 늘 두려운 것이었다.
잠든 엄마의 머리맡에서 죽지 말라며 펑펑 울던 꼬마는 아직도 엄마에게 환장포인트로 남아있다.
여전히 그렇다.
죽음의 고통 따위가 아니라 누군가가 떠나간 후 남겨질 내가 두렵고, 누군가를 남기고 떠나가는 내가 두렵다.
내가 그를 그리워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들과, 어쩌면 내 기억 속에서 잊힐 것들이 두려웠다.
경험해보지 않은 그 상황은 종종 나를 괴롭힌다.
삿포로행 비행기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흔들렸을 때도 그랬다.
기왕이면 이런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찰나의 순간 떠나고 싶고,
꼭 선택해야 한다면 남겨진 쪽보다 떠나는 쪽이 되고 싶다.
가지는 것보다 잃는 것이 늘 더욱 두렵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새로운 무언가에 발을 디디지 못한 채 물가만 참방거리는 것은.
가끔은 어딘가 모호한 사람인 나를 들키곤 했다.

그리고 요즘은 더더욱 그랬다.
안갯속인 것도 같았고, 사실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싶기도 했다.
반복되는 일상은 의미를 주지 않았고, 가끔은 내가 미쳐버린 것도 같았다.
관계에 있어 애정을 많이 쏟는다는 말을 듣곤 했는데 관계에 힘을 빼는 방법도 배우는 중이 아닌가 싶다가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하루를 그저 보냈다.
좋은 것은 휘발되었고, 싫은 것은 나를 두드리지 못했다.
그게 무엇이든 요즘의 내 모습이 썩 달갑지는 않았고,
도통 이 모호한 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고작해야 내가 삿포로에 대해 아는 것은 이 문구
그리고 러브레터의 '오겡끼 데스까-' 정도.
사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여행을 확정하기 전 취소할 일은 없는지 되물었던 순간을 증명하듯
우리는 너무 바쁘고 정신없었다.
모호함과 겹쳐 여행이 신나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것마저 좋지 않은 순간들을 살고 있었다.
삿포로에 대해 그 무엇도 찾아볼 여유도 없었고,
열받아서 취소해버리려고 했던 료칸이 첫 숙소라 다행이라고 했다.
둘 다 죽은 듯이 쉬기만 하자며.
삿포로에 도착한 후에도 종일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신경 쓰이는 나날들 속이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좋았다.
그래서 좋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삿포로에 가자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 이래.'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남발했지만,
그래서 우리만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스노우볼 속에 갇힌 것 같은 그 도시에서는 어떤 소란스러움도 고요했다.
"나 지금 좀 설레는 것 같아."
내 말에 너는 내가 그토록 여행을 다녔으니 감흥이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던가.
그래 맞다, 나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어딘가 균형이 엇나가고 나는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어떤 것이 의미가 되는지 다시 생각해야겠다.
의미 없는 수돗물을 들이켤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나도 만년설을 찾아 나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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