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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ㄱ

동생

굥갱 2023. 3. 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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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죽어볼까 생각했다.
생각만 한 것인지 정말 실행하려고 한 것인지 나에게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는 당연히 기억날 리 만무하다. 창틀에 걸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 기억과 그 이유와 그리고 내 다리를 끌어안은 동생이 선명할 뿐.

엄마, 아빠, 친구, 연인 무수한 관계의 존재성에 대해 생각하고 곱씹으면서도 동생에 대해서 한 가지 정의를 내려보거나 관계를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어쩌면 이미 하나의 존재나 다름없었는지 모르겠다. 집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감히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아주 당연하게. 어릴 적에는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할 거라는 말 대신 동생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고 말한 적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각별하고 애틋한 사이라는 뜻은 아니고, 오히려 서로 더러운 성격 건들지 말아야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나는 그런 적이 있으니깐.
어릴 적 동생이 장난감으로 유리를 치는 것을 지켜보다가 튄 유리조각은 내 발등에 상처를 남겼고, 동생을 베란다에 가뒀다가 동생이 유리를 깨는 바람에 동생의 손목에는 흉이 남았다. 서로 상처를 남긴 적은 있어도 서로가 상처가 된 적은 없다. 애틋함은 없지만 그보다 조금 더 오묘한, 소란스러운 밤이면 서로를 의지해 그 밤을 지새웠다. 굳이 배려나 이해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영역을 알고 그 선을 지키려 하지 않아도 이미 선의 의미가 흐려진 사이. 나에게 동생이란.

" 너 형제 있어?
" 있지, 동생 두 명.
방금까지 말한 것은 네 살 터울의 첫째 동생 승현이. 여덟 살 터울의 둘째 동생 승우는 조금 다른데 솔직히 말하면 그는 나에게 불청객이었지. 아홉 살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그 애는 우리 곁에 찾아왔다. (태어난 날이 그때이다) 방학 내내 할아버지 집을 전전해야 했고 엄마를 편히 볼 수 없어 빼앗긴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집안에서 제일 무서운 게 나라고 할 만큼 동생에게 관여했고, 어느 순간에는 둘 다 내가 지켜야 할 존재였다. 첫째 동생과 같은 끈끈함은 덜하지만 역시나 자연스러운 사이. 내가 그 밤에 너를 번쩍 안아 올리고, 우는 너를 한참 달랬던 것을 너는 기억 못 하겠지.



우리는 분명히 다르다. 엄마에게는 셋다 제 자식이고 아픈 손가락이겠지만 셋다 고집세고 성격 더러우면서도 그 특징이 다르다. 확실한 건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서로에게 유대감이 있다는 것. 물론 나에게 승현이가, 승현이에게 내가, 승우에게 내가, 나에게 승우가. 그 관계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테고 승현이와 승우 사이에는 또 내가 모르는 관계가 있겠지. 남미여행 하던 중 언니는 "승현이가 저렇게 말하는 거 처음 봐"라고 말했다. 가끔 승현이를 보면 저렇게 사회성이 없어서야.. 했더니 승우는 더 한 것도 같다. 그럼에도 가끔 친구를 만나고 하는 거 보면 너희에게도 내가 모르는 너희의 세상이 있겠지. 나의 세상과 너희의 세상은 평생 겹치지 않을지 몰라. 그래도 내 세상의 시작이 조금 더 다양한 것을 보길 바랐던 엄마가 여행을 권유한 것이고, 그 뒤로 여행을 원 없이 다니는 나처럼 과감히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너희를 보면 우리가 남매구나, 그리고 누나로써 나는 너희에게 영향을 미치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해. 언젠가 엄마가 본인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래도 의지할 곳은 너희 서로일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엄마가 말하는 의지란 좀 더 각별하고 애틋한, 눈에 보일만큼 살가운 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주 당연한, 우리는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너희에게 나는, 어떤 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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