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별세상
잠수이별 vs 환승이별 세상에 두가지 밖에 없다면? 본문
이별의 예의가 없는 것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라는 책 제목과 같이 관계는 잘 시작하는 것보다 잘 매듭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고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무한한 노력들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끝은 허무할 때가 많다. 누군가 하나가 떠나면, 하나는 남겨지게 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남은 감정이 없게 딱 떨어지면 좋겠지만, 대개 비슷한 잔여물이 남거나 한 명이 온전히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좋은 이별이란 없다. 죽음이던 절연이던, 모든 이별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런 이별에서 마저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이 잠수이별과 환승이별이 아닐까. 만남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지는 만큼 이별도 가벼워졌다. 감정의 잔여물을 내버려 둔 채 상대를 향한 배려 없이 떠나가는 것이다.
당신이 정의하는 환승이별과 잠수이별은 어떤가. 환승의 기준에 대한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비슷한 정의를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옮겨 붙이는 것과, 함께 쌓던 마음을 강제종료하는 것.
환승이별의 경우, 대체로 이미 그 전조를 예감한 경우가 많았다. 마음을 이미 누군가에게 덜어주고 있는 것이 표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남은 마음에 기대어 의지하다 내버려지곤 한다. 결국 언젠가 떠나갈 사람이 떠나는 타이밍이 지금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환멸이 상대를 향하다가, 어느 순간은 나를 향한다. 상대는 이미 바닥난 마음일 뿐인 것인데 내 노력이 부족했나, 나에게서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다.
반면 잠수이별은 더 질이 나쁘다. 갑자기 맞은 죽음이 황망한 것처럼 분노와 함께 상대를 염려하게 된다. 나를 버리고 떠난 그 마음에 아련한 미련마저 더해지는 것이다. 이 사람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부정하며 행여 그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닌가 걱정하다, 기어코 들리는 소식에 무너져버리고 마는. 마침표 찍지 않은 관계는 얼마나 배려 없는 것인가.
만약에 세상에 환승이별과 잠수이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세상은 너무나 각박할 것 같다. 언젠가 끝날 관계가 전제되어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감히 누군가에게 정을 줄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마음 한켠을 숨기며 상대와 연을 맺거나, 애초에 그 어떠한 시작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이상 해피엔딩이란 것은 없다. 우리는 엔딩 그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이별의 끝은 아름답지 못하다. 때로는 감정의 잔여물에 파묻혀 헤엄치게 될지언정 마침표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문장의 마무리를 지은 후에야 다음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이별의 예의를 최선을 다해 지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