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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ㄱ

하루

굥갱 2023. 4. 17.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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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꿈이 더 천국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뒤집어진 폰은 그 와중에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란스럽게 울려댔다. 차라리 지옥이 편할 테였다.
'전화받아.'
이윽고 요란스러운 휴대폰이 침묵하며 단 네 글자를 던졌다. 생각하고 보면 그는 늘 그래왔고, 지옥은 어디인지 조금 혼란스러움이다. 우리는 헤어지는 그 과정에 놓여있다. 게 중 몇 번은 그의 전화를 받았고, 종종 달래는 말투를 사용했지만 대체로 그는 나를 질타했다. 서른세 번째를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희는 알림 창으로 예상과 다르지 않은 메시지만 확인 한 채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공기가 몸이 온몸 세포를 깨우는 느낌은 분명하지만, 도통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나는......."
너를 살려야 하는 것일까. 끝맺음 짓지 못한 문장이 차가운 공기를 맴돌며 귀에 맴돌았다. 희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시간을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헤어지는 과정에 있었다. 그리고 너는 죽었다. 서른세 번째, 너의 죽음을 맞이한 날의 하루였다. 나는 이곳에 갇혀있다.

사실 정확히 서른세 번째라 말하기도 쉽지 않다. 처음 이 현상을 깨달은 건 기시감이었다. 가끔 스트레스받거나 피곤할 때면 현실적인 꿈을 꾸곤 하는데, 그러다 꿈에서 깨어나면 잔 것 같지 않은 피로감과 함께 묘하게 현실감이 남은 꿈에 기분이 더러워지곤 했다. 여느 때처럼 그런 꿈을 꾸는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헤어지고, 네가 죽는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가.
나는 네가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고, 너는 그 흔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로 한 후,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불같이 싸우고, 너는 끝을 고한 후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희는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나를 떠난 것은 너이고, 늘 붙잡는 것은 내 몫이었다. 실낱같은 기대감만을 보상처럼 주어주는 너를 나는 여태 뭐가 좋아 벗어나지도 못한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시간 속에 갇혀 끝없이 네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가.
다시 한번 울려대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아예 꺼버린 채 희는 다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처음 몇 번은 그저 데자뷔라고 치부했다. 그럴 만큼 강력한 사건이었으니깐. 그다음 몇 번은 현을 붙잡거나, 소리치거나,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죽음은 당연하게 그곳을 맴돌았다. 장소를 바꾸고, 사건을 바꾸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 기현상에 대해 물색해 봐도 너의 죽음을 막는 방법도, 이 시간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휴대폰을 끄고 더 잠에 드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너는 어김없이, 죽었다.

"개자식..."
내 곁을 떠나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6년 전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너는 그날부터 나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보여줬다. 우리는 참 예뻤다. 유치한 노래 속 가사라도 해도 좋을 만큼 우리는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그렇게 너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연인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로, 가족으로, 때로는 나 그 자체로. 그리고 일상은 무뎌져 가는 것이니깐. 내방 구석구석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지만 당연히 있는 것을 늘 쓸고 닦아내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차츰 먼지가 쌓여갔다. 가끔 그 먼지를 자각해 쓸고 닦아보지만 이내 먼지는 다시 쌓이고, 낡아갔다. 그것이 익숙함이고 편안함이라고 생각했다. 너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관계를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 몸에 맞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 그 모든 것이 너는 질려갔나 보다.

'아, 잠시만...'
처음엔 같이 있는 자리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함께 있는 시간에 휴대폰을 보는 일이 잦았고, 내 이야기는 더 이상 너에게 들리지 않아 보였다.
'희야, 네가 싫어진 게 아니야. 그저...'
너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개소리를 기어이 내게 내뱉었다. 우리가 만난 따스함을 잃은 서늘한 3월이다. 겨우내 너는 추위보다도 모질었다.

마흔두 번째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무런 알람도 울리지 않는 시작이었다. 엇박자처럼 시간이 뒤틀린 채 너의 전화가 울린다.
"현아..."
아니다, 현은 나다.
희를 사랑한 것을, 희에게서 거리를 둔 것은, 더 이상 네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하며 희를 떠난 것은, 나다. 나는, 네가 되어 마흔두 번의 내 죽음을 목격하고 있었다.
희의 모습을 한 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전날 다 되었다며 제발 끝내자고 소리 지른 나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독촉하듯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함께 살던 집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영영 희에게서 없듯이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짝이던 우리의 모습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채.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애원하듯 울부짖다, 결국 체념한 듯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내 말에 수긍했다. 집에서 만나면 결국 또 소리 지르며 끝날 것 같아 집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자 했다. 생각하고 보면, 우리는 그곳에서 만났고, 이야기했으며, 때로는 다퉜지만, 헤어짐을 아쉬워한 날이 더 많았다. 하필 그곳에서 나는 너에게 마지막을 고했다.
마흔세 번째, 마흔네 번째 하루가 흘러간다. 현인 나는, 희의 모습을 한 채, 나는 너로, 그리고 나로 죽음을 마주한다.

내가 죽어야 끝이 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 마흔아홉 번째 하루가 시작되었다. 죽는 것은, 현인 나일까 희인 나일까. 벗어나는 끝이 있는 걸까. 그렇게 카페에 앉아있자 파리해진 희가 들어왔다. 현이 아닌 희를 마주한 마흔아홉 번째 하루였다.
"현아..."
바짝 메마른 희가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자 알게 되었다. 죽음을 직면한 마지막 순간에 나는 염치없이 너를 후회했던 것일까. 그래서 네가 되어 무수히 나를 잃은 것일까.
내가 머문 49일이 지옥이었다면, 나는 너를 생에 남겨두고 떠나가는 것이구나.
현의 입안이 비릿했다. 너를 그렇게 떠났으면서도 감히 네가 애틋하다.
"나는 더 이상 너를 찾지 않을 거야..."
거기까지 말한 희는 그러지 못할 걸 아는 듯 고개를 파묻으며 짐승 같은 울음을 내뱉었다. 메말라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눈물이 쥐어짜이며 그를 비틀었다.
점원은 익숙한 듯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조용히 문을 걸어 잠갔다. 음악의 소리를 키우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들었다. 우유가 끌어 오르는 소리가 음악에 파묻혔다. 테이블 위에 조용히 우유를 올려둔 그는 그대로 다시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희를 바라봤다.
아니다, 나의 하루가 반복되는 지옥이라면, 너의 하루는 나아가는 것이구나. 염치없이 사랑했던 너를, 나는 잔인하게 떠나간다.
서늘한 3월은 어느덧 완연한 봄을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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